요새 이야기

새벽의 클릭 전쟁: 대리 수강 신청자의 일상

번동부동 2025. 2. 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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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기 전, 내 하루는 시작된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오늘 수강 신청을 도와줄 대학들의 시간표다. 수강 신청 시즌이 되면 내 하루는 분 단위로 움직인다. 대리 수강 신청을 의뢰한 학생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그들의 우선순위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나는 정식으로 등록된 대학생도 아니고, 특정 학교에 소속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수강 신청 시즌이 되면 여러 대학의 시간표를 분석하고, 서버 속도를 계산하며, 수강 신청 전략을 짜는 ‘전문가’가 된다. 나에게 의뢰하는 학생들은 보통 바쁜 아르바이트생이거나, 작년의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신입생들이다. 어떤 학생들은 너무나도 간절한 마음으로 연락해 온다. “제발 이 과목만은 꼭 들어야 해요.” 그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들으면 나 역시 어깨가 무거워진다.

수강 신청 당일, 긴장이 극에 달한다. 학교마다 서버 속도가 다르고, 인기 강의는 1초 만에 마감되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손가락을 풀어주고, 마우스를 몇 번 움직여 감각을 익힌다. 모니터 두 개를 켜고, 여러 대학의 수강 신청 페이지를 띄운다. 시계 초침이 59를 가리킬 때, 나는 이미 모든 버튼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

0.1초 차이로 승패가 갈린다. ‘신청 완료’ 메시지가 뜰 때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모든 학생의 신청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한 경우, 나는 최대한 빠르게 대체 과목을 찾아야 한다.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어 대체 과목을 묻거나, 미리 받아둔 리스트에서 차선책을 선택한다.

수강 신청이 끝난 후, 의뢰인들에게 성공 여부를 알린다. “전부 성공했어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면, 곧장 감사의 답장이 돌아온다. “정말 감사합니다! 바로 입금해 드릴게요.” 작은 성공이지만, 이들에게는 한 학기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수강 신청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았다.

이 일이 마냥 떳떳한 것은 아니다. 대리 수강 신청이 정당한 행위인지에 대한 논란도 많다. 어떤 교수님들은 대리 수강 신청을 막기 위해 학생들에게 직접 출석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강 신청의 경쟁률이 너무나도 치열한 현실에서, 많은 학생들이 이렇게라도 원하는 수업을 듣고 싶어 한다. 나 역시 언젠가 이 일을 그만둘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새벽마다 알람을 맞추고, 손가락을 풀어가며, 또 다른 학생들의 간절한 요청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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