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이야기

미스테리 헤어디자이너

번동부동 2025. 2. 2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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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작은 골목길 안, 오래된 건물 2층에는 ‘라온 헤어’라는 작은 미용실이 있었다. 주인은 30대 후반의 여자, 그녀의 본명은 아무도 몰랐다. 그녀는 자신을 ‘윤라온’이라고 소개했지만, 그것이 진짜 이름이 아니라는 것은 단골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

“미용사는 본명을 쓰면 안 돼.”

그녀가 가위질을 멈추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남의 머리를 다듬는 일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야. 운명을 조금씩 깎아내는 일이거든.”

손님들은 처음엔 그녀의 말을 장난처럼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라온 헤어’에서 머리를 자르면 왠지 모르게 운명이 바뀌는 듯했다. 진학을 망설이던 학생이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고, 구직에 어려움을 겪던 청년이 꿈같은 직장을 얻었다. 연애운이 없던 사람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어느 날, 단골 중 한 명이 머리를 자르고 돌아간 후 큰 사고를 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후 미용실의 문을 하루 닫았다. 다음 날 다시 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예전보다 더 조용해진 모습이었다.

단골 손님 중 하나였던 지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라온 씨, 본명은 뭐예요?”

그녀는 순간 멈칫하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 본명을 알게 되면 나도 너도 위험해질 거야.”

지수는 반쯤 장난처럼 받아들이며 웃었지만, 그녀의 말 속에는 알 수 없는 무게가 담겨 있었다.

어느 날 밤, 지수는 미용실 근처에서 술에 취한 남자가 소리를 지르는 걸 보았다. “내 머리를 망쳐놓고!” 그는 머리를 움켜쥐고 미용실 유리문을 쾅쾅 두드렸다. 라온은 조용히 문을 열고 남자를 안으로 들였다. 지수는 걱정이 되어 미용실 창문으로 몰래 들여다보았다.

남자는 거울을 보며 울먹였다. “그날 이후 내 인생이 망가졌어. 직장에서 잘리고, 여자친구한테 차이고, 사고까지 당했어.”

라온은 조용히 가위를 들어 그의 머리카락 한 줌을 잘라 바닥에 떨어뜨렸다. “가끔은 흐름을 바꾸려면 다시 잘라야 해.”

그 순간, 지수는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빛을 받아 검은 그림자처럼 일렁였다.

며칠 후, 그 남자는 직장을 다시 구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는 더 이상 라온을 원망하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미용실을 다시 찾았다.

지수는 결심했다. 라온의 본명을 알아야 했다. 그것이 이 모든 신비로운 일의 열쇠일지도 몰랐다.

그녀가 몰래 미용실의 서랍을 뒤지던 날 밤, 한 장의 오래된 신분증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그녀의 본명이 적혀 있었다. ‘이수현’.

순간, 미용실 거울이 일그러지듯 흔들렸다. 그리고 라온, 아니 수현이 조용히 말했다. “네가 내 이름을 알아버렸구나.”

그녀는 천천히 가위를 들었다. “이제 너도, 네 운명도 바뀌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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